<#테니스 스커트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 2016년, 걸그룹 무대와 길거리를 뒤덮은 순수한 섹스어필을 향한 자유의지

김뉴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올해 초, 트위터에서 한 뉴스 인터뷰 동영상이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영상 속에서 앵커는 90년대 ‘X세대'의 새로운 패션을 소개하면서,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본인의 취향대로 옷을 입는 신세대들을 인터뷰한다. “남의 시선을 느끼지 않습니까?”라는 앵커의 질문에, 검은 부츠를 신고 배꼽이 보이는 탱크탑을 입은 여성은 “아니요, 저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제가 입고 싶은 대로 입구요.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거든요.”라고, 무심하면서도 똑 부러지는 말투로 대답한다. 영상을 본 사람들은 동영상 속 가장 강렬한 대사를 인용해 '#이렇게_입으면_기분이_조크든요'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진한 화장, 타투, 겨드랑이가 드러나는 나시 탱크탑, 짧은 포마드 헤어스타일을 한 자신의 사진을 올리며, 여성의 패션이 남성들에게 성애의 대상으로 어필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시작했다. 이 해시태그에서 지시하는 ‘기분’이란 나 자신이 주체가 되어 느끼는 만족감으로, ‘기분이 좋다’는 문장은 외부의 시선이나 사회적 압력이 이런 나 자신의 만족감보다 위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데 이 해시태그의 유행이 계속되면서 본래의 맥락이 배제되거나 왜곡된 트윗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미 너무나도 보편적인 취향이기 때문에 누구도 눈총을 주지 않을, 그러니까 사회가 정의하는 ‘적절한 의상’의 좁은 한도 내에 위치한 ‘안전하고 예쁜’ 취향을 전시하는 트윗들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은 ‘사회 규범에 도전적인 취향만 좋은 취향이냐’ 혹은 ‘순수한 나의 취향을 왜 사회가 요구하는 틀에 맞추어 넣은 것으로 보느냐’며 ‘취향 존중’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이 글은 바로 그 ‘취향의 다이어그램’에 관한 글이다. 즉 사회와 미디어가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협소한 범위의 미의 기준이라는 작은 원, 그리고 그것에 속하지 않는 다른 수많은 취향의 집합 속에서, 나의 취향이라는 집합의 원은 어디에 그리고 어쩌다 그곳에 위치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고찰해보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많은 테니스 스커트는 어디서 왔을까

 

  누군가 나에게 2016년 상반기의 패션 유행을 하나 꼽아보라 한다면 그것은 테니스 스커트가 될 것이다. 테니스 스커트란 골반 부근부터 각진 주름이 퍼지도록 디자인된 A라인 스커트를 일컫는다. 움직일 때마다 살랑거리는 치맛 주름이 포인트로, 발랄함·순수함·쾌활함·활동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전달하는, ‘소녀 이미지’에 딱 맞는 스커트라고 할 수 있겠다. 테니스 스커트의 유행이 얼마나 대단했느냐 하면, 음악방송을 틀면 언제나 그룹명은 달라도 비슷한 테니스 스커트를 입은 걸그룹이 등장하고, 지하철을 타면 한 칸에 테니스 스커트를 입은 여성이 최소 3명 이상 보일 정도였다. 

 

  많은 아이돌 커뮤니티는 아이돌 의상 또는 일상복으로서의 테니스 스커트 유행의 시발점을 동남아시아 교복의 ‘프레피 룩’에서 영감을 받은 에프엑스의 <첫 사랑니(2013)> 무대의상으로 여긴다. 이전에 아이돌의 무대의상에 교복류의 의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깔끔하고 핏이 타이트한 일명 ‘프레피 룩’을 내세운 것은 에프엑스가 처음이었다. 일반적으로 걸그룹의 교복 의상은 보는 이의 심리적 장벽을 낮추기 위해, 진짜 교복의 모습을 그대로 따오기보다는 교복의 모습을 은유하는 방식을 택해왔다. 2013년 <첫사랑니> 활동 이전의 원더걸스, 걸스데이, 카라 등의 교복 컨셉 무대의상이 화려한 색상과 액세서리로 무현실 속 소녀와 거리감을 두며 무대의상임을 강조하고 일반 교복과의 차이점을 부각하는 방식이었다면, 에프엑스의 프레피 룩은 거꾸로 현실에 실재하는 여중생과 여고생의 이미지를 무대 위로 직접 끌어와 ‘테니스 스커트’라는 아이템으로 대상화했다는 점에서 문제점을 지닌다. 에프엑스의 프레피 룩 이후 애니메이션 속 일본의 교복이나 체육복, 혹은 한국의 예술고등학교 교복의 외양을 무대의상으로 가져오며 미성년자의 성적 대상화를 은근히 부추기는 걸그룹이 급증했다. 미디어와 애니메이션에서 구현된 소녀의 이미지를 실재 교복-고등학생의 이미지와 연결해 엮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테니스 스커트와 교복 모에

 

  2014년 상반기까지도 대부분이 섹시 컨셉을 추구하던 걸그룹 속에서 ‘청순’을 컨셉으로 잡는 아이돌은 에이핑크가 거의 유일했다. 그러나 섹시 컨셉 열풍이 과열되며 레인보우 블랙, AOA, 나인뮤지스, EXID 등 여러 그룹이 안무나 의상의 선정성을 이유로 방송 불가 판정을 받는 일이 일어났다. 특히 2014년 초에 등장한 그룹 스텔라의 곡 <마리오네트>는 한국 가요계에서 밀어붙일 수는 있는 섹시 컨셉이 이미 극한까지 도달했음을 보여줬고, 인터넷에서도 이러한 경향에 대해 ‘지겹다’ 거나 ‘너무 심하다’는 여론이 힘을 얻었다. 곧 이러한 기류를 감지한 아이돌 계는 방향을 선회하기 시작했고, 2014년 11월 러블리즈 그리고 2015년 1월 여자친구의 데뷔를 기점으로 청순한 컨셉의 아이돌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러블리즈와 여자친구는 교복-학생 컨셉의 의상을 3곡 이상의 무대에서 꾸준히 활용했으며, 뮤직비디오의 배경으로 학교라는 공간을 설정함으로써 일본 애니메이션 속 노스탤직한 소녀의 이미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로써 교복은 단순한 무대의상으로서의 스킨이 아닌, 특정 걸그룹이 지향하는 구체적인 정체성-아무것도 모르던 그때의 순수했던 소녀들-을 드러내는 장치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등장한 ‘청순 컨셉'의 걸그룹은 이전의 걸그룹이 내세웠던 섹스어필을 아예 포기했을까? 물론 그렇지 않았다. 바로 여기에서 테니스 스커트의 아이러니한 두 가지 기능이 드러난다. 첫 번째, 교복을 은유해 ‘순수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미성년자 소녀’의 이미지를 만들어 낼 것. 두 번째, 보일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길이에서 펄럭이며 대중들의 ‘엿보고 싶은 욕망'을 자극해 눈길을 사로잡을 것. 서로 다른 이 두 기능은 결국 아이돌이 자신이 누군가에게 성적으로 어필하는 존재로 비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숨기고 아무것도 모르는 소녀를 적극적으로 연기하도록 만들었다. 섹시하고 강한 걸그룹의 시대가 지나간 뒤 떠오른, ‘너는 순수했음 좋겠어. 근데 성적으로 어필도 했으면 해… 물론 대 놓고는 말고.’라는 다소 꼬인 요구에 대한 화답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테니스 스커트였던 것이다. 

 

비정상적으로 짧아 허리가 다 보이는 상의, 속바지가 보일 수밖에 없는 길이의 짧은 치마의 무대의상들은 교복의 기능을 상실한 아이러니의 산물이다. 아슬아슬한 길이의 치마를 입고 다리 라인을 강조하면서도 어딘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어, 사진작가 로타의 소녀 사진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전형적인 티저 이미지들 또한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 로타 작가의 사진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페티시적인 속성이 강한 스쿠미즈, 부르마, 세라복 등의 의상을 입고 ‘난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듯한 멍한 표정을 지은 채 비정상적으로 특정 신체 부위를 강조하는 포즈를 취한다. 이러한 로타 사진의 특징은 미성년자처럼 보이는 소녀가-의도하지 않았다는 듯-성적 함의가 담긴 포즈로-신체 부위를 은밀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Figure 1

 

판치라, 관음의 시선 

 

‘엿보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는 테니스 스커트의 수동적 섹스어필은 ‘판치라’라는 개념과도 관련되어 있는데, 판치라란 보통 애니메이션 속에서 의도치 않게 캐릭터의 팬티 일부가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판치라의 페티시적 속성에서 중요한 것은 ‘이것 보라는 식으로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 아닌, ‘치마 속을 감추려는 의지가 있음에도 치마 속이 보일 듯 말 듯하다.’는 점, 그러나 동시에 ‘아무리 애써봐야 보이지 않을 게 틀림없다.’는 느낌에서 오는 짜릿함이다. 미성년자인 소녀의 순수함을 나타내면서도 바람이 불면 언제든 치마 속이 노출될 가능성을 가진 테니스 스커트의 속성은 이러한 목적에 정확히 부합한다. 사실 격렬한 운동을 하다가 넘어진 테니스 선수의 판치라 - 무대 위에서 춤을 추다가 살짝 보인 아이돌의 판치라 - 아침에 식빵을 물고 달리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보인 애니메이션 주인공의 판치라는 같은 관음적인 시선을 공유하고 있다. 관중들은 판치라를 입은 대상이 자신의 치마 길이를 의식하고 있지 않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치마 속을 ‘의도치 않은 듯’ 자신에게 슬쩍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 소녀시대의 데뷔곡인 ‘다시 만난 세계(2007)’ 안무 중 크게 발차기를 하는 장면만을 네티즌들이 캡처해 모아놨던 일은, 대중이 이러한 수동적 섹스어필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리고 아이돌 기획자들이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알 수 있었던 하나의 지표였다. 

 

  언젠가부터 무대의상에서도, 일반 의상에서도 속바지가 달린 테니스 스커트가 당연시되는 현상 또한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결국 테니스 스커트를 입는 사람들이 ‘자신의 치마 속이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뜻이며 아이돌의 경우 그것을 전략으로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속바지는 아이돌 혹은 여성의 움직임을 좀 더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안전장치인 동시에 판치라의 ‘엿보는 즐거움’은 그대로 남겨두면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다는 죄책감’은 없애주는 장치로 기능한다. 판치라의 핵심은 ‘팬티’가 아닌 ‘치마 속을 들여다본다는 쾌감’이기 때문이다. 교복, 학교의 이미지와 펄럭이는 치마의 속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가장 대표적인 예로 그룹 여자친구를 들 수 있다. 여자친구는 위에서 언급했던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부류의, 청순한 의상과 힘 있는 안무를 동시에 보여주는 무대로 본인들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굳힌 그룹이다. 여자친구의 멤버들은 무대에서 파워풀한 안무를 소화하는 데에 정신이 없으므로 춤을 추는 동안 펄럭이는 치마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고 (혹은 그렇다고 연기하고 있고), 그러므로 치마 안에 속바지를 착용한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속바지란 안전장치는 과감히 펄럭이는 그들의 ‘치마 속’을 관중이 좀 더 거리낌 없이 들여다봐도 괜찮은 알리바이가 된다. 아이돌이 속바지를 입었기 때문에 사진기자들은 치마가 흩날리는 순간을 적나라하게 찍어 올리고, 누구든 기사에서 치마가 격하게 펄럭이는 사진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속바지가 달린 짧은 테니스 스커트는 착용자인 여성에겐 자신의 순수함과 무해함을 드러내면서도 은근한 섹스어필을 가능하게 하며, 이를 지켜보는 사람에겐 자신의 관음적 호기심을 합리화할 기회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미성숙한 소녀의 이미지

 

  이러한 경향은 일상복으로써 테니스 스커트 유행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된다. 남초 사이트에서는 테니스 스커트가 일명 ‘남자들이 좋아하는 치마’로 불렸고, 관련 포스트에는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치마 속이 보여서 좋다’는 뉘앙스의 댓글이 추천 최상위에 올라와 있는 일이 빈번했다. 이처럼 테니스 스커트가 남성 일반에게 어필했던 포인트는 주로 ‘입으면 어려 보이고 소녀다우면서도 관음 욕구를 자극한다는 점’이었다. 재밌는 것은 많은 여성이 남성 일반의 생각은 자신의 의상 선택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외부 시선이 미치는 영향력을 완전히 부정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반응들은 남성들의 합리화 기제를 여성들이 그대로 받아들여 “나는 순수한 소녀이고 성적 어필을 할 의도는 추호도 없다.”는 여성 버전의 합리화 기제를 만들어낸 것처럼 보였다. 주디스 버틀러는 “젠더는 리허설을 거친 연기이고, 그것을 써먹는 특정 연기자들보다 더 오래 존속하는 각본으로서, 다시 한번 현실에 실현되고 재생산되기 위해 연기자들을 필요로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테니스 스커트가 소녀-역할놀이를 위한 현실의 무대의상 같은 것이었다면, 보는 이의 시선을 내면화 한 여성들이 그 무대에 자진해 올라서서 소녀-배우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엄연히 존재하는 ‘관객’의 존재를 애써 못 본 척하는 배우처럼 말이다. 테니스 스커트를 입었던 여성들 개개인이 그 치마를 골라 입었던 이유는 제각각일지라도, 걸그룹이 해당 의상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여성상이 하필 ‘그 치마’를 골라 입는 데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점은 분명해 보인다. 옷이란 기본적으로 ‘보이기 위한 것’이고 어떤 옷을 입을지 고른다는 것은 결국 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 지를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걸그룹은 ‘보는 이들’, 즉 이성애자 남성의 욕망을 가장 적극적으로 의식하는 집단이고, 아이돌 집단 내에서 유행하는 패션이란 결국 그들의 입맛에 가장 잘 맞는 여성상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물론 테니스 스커트가 나타낼 수 있는 이미지가 교복이나 소녀뿐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2014년 말부터 시작된 청순 걸그룹의 열풍과 더불어 비슷한 의상을 입은 걸그룹이 눈에 띄게 늘어났을 때, 그들이 보여준 경향성은 뚜렷했다. 아련하고 청순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온순한 미성년자 소녀의 이미지 말이다.

 

  아이유의 <Zezé>가 로리타 논란을 일으키며 인터넷 상에서 여러 갑론을박이 이루어진 이후로, 빠순이들은 투박하게나마 이전에는 없던 어떤 종류의 센서를 가지게 된 듯했다. ‘로리타’라는 투박한 말로 묶여있긴 했지만, 아이돌계에서 반복 재생산하는 미성숙한 여성의 이미지의 존재에 대해 객관적으로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인지는 필연적으로 팬들 자신이 이전에 아이돌을 향유해왔던 방식, 또 아이돌들이 새롭게 내보이는 콘텐츠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도록 만들었다. 특히 매번 컨셉의 차별화를 무기로 삼던 레드벨벳이 이전의 유행을 고스란히 답습한 듯 학교 강당을 배경으로 테니스 스커트, 돌핀 팬츠, 니삭스를 신은 채 등장한 <러시안 룰렛> 뮤직비디오는, 그다지 민감하지 않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조차 어떤 ‘경보’가 울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왜 모두가 이렇게까지 미성숙한 소녀의 이미지에 몰두하는가’에 대한 의문 말이다. 

 

 

나의 취향과 욕구는 온전히 내 것인가

 

  사회가 허락하고 때로는 권장/강요하는 여성상이 매우 한정적이고 좁을 때, 나의 취향이 그 영역 안에 정확히 부합한다면 그것은 정말 순수한 나의 취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스타일이든 모두 각자의 취향으로서 존중받아야 하겠지만, 어떤 스타일의 옷은 분명히 사회가 요구하는 가공된 여성상에 적극적으로 부합하고 이를 재생산한다. 입는 당사자의 ‘진정성’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이상할 정도로 구체적이고 좁은 취향의 옷이 과할 정도로 크게 유행하는데, 모두가 이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나와 우리의 취향이 어디에서 왔는지, 또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한 번쯤 곰곰이 되돌아봐야 할 때가 아닐까.

 

  테니스 스커트에 대해 처음 트위터에서 언급했던 5월 이후로 세 달이 넘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음악방송에서는 테니스 스커트를 입은 걸그룹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몇 년 사이에 섹시컨셉의 걸그룹은 찾기 힘들어진 대신 아이돌들은 ‘샤샤샤’, ‘오빠’, ‘아잉’ 같은 가사로 대표되는 애교 섞인 노래를 부른다. 설리는 구하라와 찍은 ‘우정 사진’을 인스타그램에서 지웠지만 로타 작가의 ‘야한 마음으로 찍지 않았다’는 그라비아 스타일의 사진은 수많은 아류를 낳으며 아직도 대유행 중이며, 아동복 쇼핑몰에서조차 빨간 홍조에 멍한 눈빛을 컨셉으로 여성 아동들의 화보 이미지를 찍는다. 이 빅 웨이브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몇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내 아이돌이 하는 일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응원하는 빠순이든 아니든, 이제는 안락한 ‘취향 존중’의 영역에 안주하여 눈 막고 귀 닫을 것이 아니라 내 취향과 그것이 욕망하는 것에 대하여 직시해야 한다는 것. 또 그런 내 욕망을 겨냥해 만들어낸 아이돌의 이미지가 때로는 편향되고 문제적일 수 있음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수동적이고 관음적인 이미지의 걸그룹 컨셉을 순순히 받아들여 소비하기엔 ‘각성한 빠순이’들의 눈은 이미 높아져 버렸다는 것.

 

 


2016년 «잡지빠순» 1호에 실린 김뉴님의 글 <#테니스 스커트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를 일부 수정한 글입니다.

 

12월 25일, 미성년자인 에이프릴의 멤버 진솔이 움짤 등 여성 아이돌의 신체 부위를 찍은 성희롱성 게시물에 다시금 자성을 부탁했습니다. 이에 '아이돌이라면 그런 짤이라도 만들어주는 팬의 노고에 감사해야 한다'는 응답이나 노출도가 높은 의상을 문제 삼는 글에 슬럿 워크 프레임을 씌우는 응답 양쪽에 논의를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아 글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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